캠핑을 시작했을 때는 여름이었습니다. 이 때만 해도 미니멀하게 다니자란 생각으로 4인 가족이 승용차로 충분히 다니겠지 싶었지요. 그러나 캠핑에 빠져들고, 겨울이 오면서 무한한 수납 압박에 직면합니다.
저희집 이동수단은 혼다 어코드, 중형 세단입니다. 특징적인 부분은 '높이가 낮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준중형 세단이 트렁크 높이가 더 높습니다. 대신 가로 폭은 어느 정도 있고, 하이브리드 모델이 아니라 짐을 그나마 최대한 실을 수 있습니다.
캠핑 짐을 수납하면서 알게 된 점이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스페어타이어' 공간입니다. 어코드 또한 트렁크 내부 바닥을 열어젖히면 스페어타이어가 있습니다. 여기에 은근히 짐이 들어갑니다. 경량체어, 플랫버너, 화로대 등등..
또한 뒷자리 헤드룸 부분도 적극 활용해야 합니다. 이불, 베개 등은 뒷유리가 안보이더라도 여기에 욱여 넣습니다. 뒷좌석 레그룸은 텐트와 냉장고로 고정입니다. 겨울에는 조수석에도 등유통을 넣어야 합니다. 여기에다 아이들 놀이용품, 장난감, 킥보드 등이 들어가게 되면 그냥 사람이 짐들에 얹혀 가는 수준이 됩니다.
물론 이렇게 해서 캠핑을 다닐 수야 있습니다. 갈때마다 극한의 테트리스를 동반해서 말이죠. 생각해보면 억울합니다. 캠핑용품 수납용으로 들고 다니는 건 토르박스 75L 1개가 전부인데 말이죠. (다른 집은 수납박스만 여러 종류를 쓰던데..)
대략 캠핑용품 리스트는 아래와 같습니다.
뒷좌석 레그룸
- 텐트, 냉장고
뒷좌석 헤드룸
- 얇은 이불, 베개
뒷좌석 가운데
- 이불가방, 옷가방
스페어타이어 공간
- 화로대, 플랫버너, 크레모아 삼각대
- 경량체어 2개
트렁크(안쪽부터)
- 토르박스 75L(주방용품 및 기타)
- 지카로+엔트리 테이블
- 자충매트 더블, 에어베드 더블
- 툴백, 릴선, 경량체어 2개, 침낭
- 타프(슬라이딩 폴대) 또는 난로
- 설거지가방+쓰레기통, 파워스토브D
- 그라운드시트, 발판
- 멀티탭 등 전기용품, 조명, 잡동사니
위 순서대로 하지 않으면, 캠핑에 실패하게 됩니다.
차를 바꾸지 않는 이상에야, 이런 상황이면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캠핑을 다녀오는데 짐 싣느라 체력을 다 소진하지 않기 위해 '루프백'이나 '루프박스'가 절실하다.. 찾아보니 여기 또한 방대한 세계였습니다. 브랜드와 종류가 상당히 많더군요.
루프백은 크게 두 줄기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소프트루프백 : 말아서 정리가 가능하거나 소재 자체가 탄력적이라 캠핑을 다녀온 후 따로 정리하기가 수월합니다.
제가 눈여겨 본 것은 테르보 3D루프백 500L인데, 아래와 같이 말아서 접을 수가 있습니다. (가격은 20만원대)
하드루프백 : 거의 루프박스와 흡사한 모양으로 나옵니다. 별도 레인커버가 필요 없이 방수가 된다는 점이 큰 장점입니다만, 저대로 놓아야 하기 때문에 집에 수납하기가 상대적으로 까다로울 것 같습니다. 제품 중에 저는 맥스파이더 6063XL이 좋아 보였습니다.
다음으로 제가 선택한 루프박스입니다. 루프백 vs. 루프박스의 선택기준은 딱 두 개인 것 같습니다. '캠핑을 얼마나 자주 가느냐', 또한 '짐을 싣고 내리는 데에 얼마나 부지런할 수 있는가'를 잘 고민하면 되겠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귀찮음 때문에 루프박스에 고정 짐을 넣어놓고 맘편히 다니자 주의였습니다.
루프박스는 흔히 보이는 것이 툴레, 린드메이드, 코토 등의 제품입니다. 상세히 비교하며 알아보진 않았으나, 툴레는 전통의 강호 같은 느낌이고, 코토와 린드메이드는 일부 차종에 가로바 없이 일체형으로 장착 가능한 제품도 있습니다. 린드메이드는 블랙, 화이트 외 색상 선택도 가능하고 수납 효율이 좋다고 합니다.
하지만 전 아무래도 가장 쉽게 보이고 친숙한 '툴레'에 마음이 가더라구요..
툴레 루프박스 중에 고민했던 것은 사실 '퍼시픽 780 L'이었습니다. 이유는 가성비 때문이었죠. (60만원대)
모션 XT 시리즈는 가장 작은 '스포츠'도 135만원입니다. 'L' 사이즈는 160만원 이상.. 가로바를 별도 구매해야 함을 감안하면, 선뜻 투자하기 망설여지는 금액입니다. 두 라인의 차이는 '양문형 개폐' 여부와 디자인(유광), 용량입니다.
아참, 루프박스를 달기 위해서는 SUV의 경우 루프렉 유무에 따라 가로바를 선택해야 하고, 세단 또한 창문 상단에 달 수 있게끔 가로바를 찾아봐야 합니다. 툴레의 가로바를 구매할 수도 있지만, 이것만 해도 50만원 정도를 잡아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추천드리는 것은 국산 '유일 가로바'입니다. 차량 모델을 검색하면 맞춤형으로 가로바를 구매할 수 있습니다. (20만원대) 근처에 가로바, 루프탑텐트 등을 취급하는 매장이 있다면 가서 주문 후 가로바를 장착하는 것까지 끝낼 수 있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툴레의 보급형 모델인 퍼시픽을 알아보고 있는 찰나, '당근마켓'이 저를 구원해 주었습니다. 1년여 사용한 툴레 모션 XT L(450리터)을 40만원대에 구할 기회가 생긴 것입니다. 사고를 멈추고 바로 연락해서 가져왔습니다. 유일 가로바도 서슴없이 달아버렸네요.
그러고 나니 마침내 숨통이 틔였습니다. 스페어타이어는 다시 제자리를 찾아갔고, 뒷좌석 가운데와 헤드룸에 싣던 짐도 전부 루프박스로 이동했습니다. 자충매트, 에어배드 등 가볍고 부피 큰 용품들이 추가로 올라가고 나니 테트리스에도 스트레스가 많이 없어졌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점이기도 한데, 짐을 싣는 구획이 분리되다보니 테트리스할 때 순서에 집착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아주 흡족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어려움에 처합니다. 중고로 저렴하게 가져온 덕분에 장관님의 등짝스매시는 면했으나, 루프박스를 항상 달고 다녀야 하기에 '관짝을 들고 다니는 거냐', '모양이 너무 이상하다', '다른 사람들이 다 우리차를 알아본다' 등 거센 민원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런데 처가에서 차량지원을 제안해 주셨습니다. 앞으로 캠핑을 다닐 때 준대형 SUV를 빌려주시겠다는 겁니다. 실제로 SUV 캠핑을 해 본 적이 없기에 긴가민가했으나, 시험삼아 이용해 봤습니다. 이게 웬 걸, 그 모든 짐이 트렁크 하나로 모두 해결됩니다. 뒷좌석엔 시거잭이 필요하기에 냉장고를 넣어야 함을 제외하면, 등유통도 그렇고 전부다 들어갑니다. 이미 비어 있는 트렁크 하부공간도 넉넉한 용량이 나옵니다. (그동안 나의 노력은 대체...)
세 줄 요약입니다.
- 성향에 맞게 루프백 또는 루프박스를 결정한다.
- 루프박스는 당근마켓 또는 중고로 구매한다.
- 4인가족 캠퍼라면 그냥, 중형 이상 SUV를 계약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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